선창에 떨어지면서 쇠꼬챙이에 찔려......
작년 12월에 계단에서 쓰러지면서 뇌출혈로 입원한 신랑을 살리겠다고 굿을 하던 중 신장님이 이제 곧 죽을 사람 한 명 데리고 오겠다라고 공수를 내렸었다.
과연 며칠 지나지 않아 배에서 일을 하던 중 선창에 잘못 떨어지면서 쇠꼬챙이에 내장이 파열된 응급환자의 아내를 데리고 왔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하던 공간이었는데 그날은 무슨 일이었는지 미끄러지면서 선창으로 떨어지면서 쇠꼬챙이에 내장이 찢어졌단다.
바로 시내 S병원 응급실로 실려왔지만 내장지방의 두께가 얇아서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회복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보살님은 우선 환자를 살리고 보자고 얘기를 했다.
다음 날 굿당에서 법사님이 법문을 하시는데 가만히 앉아서 법문을 듣던 보살님의 태도와 표정이 심상치 않다.
뭔가에 잔뜩 화가 나있고, 조금 후에는 갑자기 기주한테 달려들어서 혼을 내시는 거다.
나중에 보니 기주의 친정 할머니 혼이 씌어서 기주한테 화를 잔뜩 내는 것이었다.
법문 도중 갑작스레 기주가 할머니한테 잘못했다고 울며불며 신랑을 살려달라고 한다.
할머니한테 큰언니도 자꾸 이상하고, 아버지도 자꾸만 아프게 만들고 왜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그 할머니 넋이 "네 에미가 신을 받아서 모셔야 하는데 그러질 않아서 화가 나서 그랬다. 그럼 네 신랑 살려주면 네가 신을 받을테냐?"
"할머니, 신랑 살려주이소. 살려주기만 한다면 신을 받아서 모실랍니더."
이렇게 확답을 받고서야 조금은 안정이 되었고, 기주는 할머니 넋을 실어서 한동안 신나게 춤을 추었다.
지금까지 굿 장면을 곁에서 몇 년이나 지켜봤지만, 이렇게 법문 도중에 넋이 실려서 노는 경우는 일반 신도들의 경우에는 없었다.
산신을 놀고, 신장장군대감을 놀고 나서 조상을 불렀을 때.
할머니 넋이 신랑을 살려주는 대신 친정 아버지를 대신 데리고 가겠다고 하시면서, 그래야 신랑도 좋아지고 기주도 편안해질 거라고 하신다.
기주 친정 쪽의 조상들이 많이 응어리진 것들을 조금씩 풀어내면서 기주 얼굴도 많이 편안해지는 것을 본다.
보살님의 몸을 빌리지 않고 기주의 몸과 입을 빌려서 직접 그동안의 맺힌 것들을 풀어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분명 이 세상에 영혼이, 신이 존재한다는 걸 다시 알게 된다.
어쨌거나 굿은 잘 끝났고 며칠 지나서 찾아온 기주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신랑이 퇴원했다고.
훨씬 편안하고 밝아진 모습으로 찾아온 기주.
그리고 나서 이틀 후 기주를 소개한 사람이 걸어온 전화.
기주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순간 소름이 끼쳤다.
신령님의 공수가 너무나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서.
내가 아버지 일을 하고 나서 직접 겪은 것만이 아니라 매번 따라다니면서 굿을 지켜볼 때마다 집안마다 얼마나 공을 들이고 살았느냐에 따라 법문을 하는 목소리가 다르고, 춤을 추는 모습이 다르다.
공을 많이 들이고 산 제가집은 법문도 수월하게 나오고, 춤을 출 때도 제비가 날듯이 가볍지만, 공을 끊고 산 제가집은 법문을 하는데 무척이나 힘겨워 하신다. 뿐만 아니라 춤을 추는 모습도 무척이나 힘겹고 무거워 보인다.
조상의 영혼은 항상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돌아가신 분이라고 소홀히 하지 말고, 돌아가신 분들이 좋은 데 가시도록 평소에 꾸준히 작은 공이라도 들이고 살자.
돌아가신 분들이 좋은 데가서 후손들을 도울 힘을 키울 수 있게.
적어도 후손들한테 해를 끼치지는 않게.